학원가의 불빛이 비추는 경제 구조와 텐포켓 세대

2026년 한국 사교육비는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를 이어가고 있다. 텐포켓 구조와 교육 양극화, 그리고 조부모 세대의 자산 집중이 학원가의 불빛 속에서 드러난다. 출산율과 소비 패턴까지 연결되는 한국 사교육의 단면을 살펴본다.
텐포켓

퇴근 길에 잠깐 걸어본 학원가는 숫자로 보는 한국 경제보다 훨씬 솔직하다. 밤 9시를 넘어서도 아이들이 교복이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분식집, 편의점을 들락거리고, 로비에 붙어 있는 플랜카드에는 의대,명문대 실적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그런데 학원가가 아닌 어느 오래된 단지 쪽으로 걸어가면, 8시 반만 돼도 불이 꺼진 영어 학원, 간판만 남은 보습 학원이 눈에 띈다. 인구는 분명히 줄고 있다는데, 왜 어떤 블록의 불은 더 늦게까지 켜져 있을까. 이 풍경 안에는 저출산, 학령인구, 교육과 주거 양극화, 그리고 텐포켓까지 한 번에 들어 있다.

지표부터 보자. 초중고 학생 수는 줄고 있는데, 한국의 사교육비 총액은 사상 최대를 계속 갈아치우는 중이다. 2020년대 들어 초중고 사교육비는 29조 원대를 넘어섰고, 정부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약 60%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학령인구는 감소했는데,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꾸준히 올라서 월평균 47만 원대, 실제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만 놓고 보면 59만 원 수준까지 오른다. 즉, 전체 학생 수는 줄어도 한 아이에게 쓰는 돈은 더 늘어나는 구조다.

이 지점에서 학원가의 밤을 보는 프레임이 바뀐다. 예전에는 '애들이 많으니 학원이 잘 된다'였다면 이제는 '아이 숫자가 적어지니, 누가 더 많이, 더 길게, 더 비싸게 투자하느냐'의 싸움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풍경은 이중적이다. 동네 전체를 보면 학원 수가 줄고 폐업 소식이 늘지만, 특정 학군지에 가면 오히려 더 크고 비싼 학원이 들어서고 밤 11시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실제 상권을 걸어보면 그 차이는 더 선명하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 상가 3층에 자리 잡고 있던 소규모 수학 학원들은 학생 수 감소와 임대료, 강사 인건비를 버티지 못하고 권리금도 못 건진 채 나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학원가 대로변에는 프랜차이즈 대형 학원, 의대, 의치약, 특목고 대비반, 프리미엄 초등 영어 브랜드가 들어서고, 같은 건물 안에 스터디카페형 자습 공간과 피트니스, 카페가 함께 구성된 복합형 학습 몰이 자리 잡는다.

이런 재편은 재무제표로 보면 단순하다. 학생 수 감소는 매출 압력을 의미하고, 이를 버티려면 단가를 올리거나 객단가가 높은 프리미엄 상품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저렴한 동네 보습 학원 여러 개'가 사라지고 '비싸지만 입시 실적이 있는 대형 브랜드 몇 개'만 남는 구조가 된다. 같은 서울안에서도 밤 9시에 불이 꺼지는 블록과 11시까지 불이 켜진 블록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다.

이 현상을 인구 구조와 같이 놓고 보면 그림이 더 또렷해진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세계 최저 수준이고, 인구,인적 자본 연구에서는 2070년 전후까지 인구와 생산가능인구가 계단식으로 줄어들 것으로 본다. 이미 지방과 농산어촌에서는 초, 중, 고 통폐합과 폐교가 일상이 되었고, 지방 대학들은 정원 미달로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단계에 와 있다.

그런데도 사교육 총액은 늘고 있다. '학생 수 감소'라는 마이너스 요인을 상쇄할 만큼 '1인당 지출 증가'라는 플러스 요인이 강력하다는 뜻이다. 이 플러스 요인을 만드는 핵심이 학부모 세대의 불안, 그리고 텐포켓이다. 아이 수가 줄수록 부모 입장에서는 '어차피 하나, 둘이면 더 제대로'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쉽다. 반대로 다자녀를 생각했던 잠재 부모들은 교육비를 계산해 보다 아예 아이 수를 줄이거나 포기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여기에 조부모 세대가 합류하면서 텐포켓이 완성된다. 한국에서 텐포켓은 한 아이를 위해 부모와 양가 조부모, 삼촌,이모 등까지 합쳐 4~10개의 지갑이 동시에 열리는 구조를 뜻한다. 통계와 카드 데이터에서도 이 패턴이 확인된다. 60세 이상 고령층의 키즈카페, 소아병원, 아동 학습자료 관련 지출은 2019년 대비 2023년에 59~115% 수준까지 증가했고, 특히 아동 학습자료 지출이 가장 가파르게 뛰었다.

조부모 세대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은퇴 이후 시간이 있고,
둘째, 부동산과 연금 중심의 자산이 아직은 뒷받침되고,
셋째, 손자녀 수가 본인 자녀 수보다 적다.

이 조합은 '시간+돈'이 동시에 아이에게 투입되는 구조를 만든다. 평일 낮에는 아이를 돌보고 등, 하원을 챙기고, 저녁에는 학원 픽업과 식사, 주말에는 체험학습, 백화점 문센 비용까지 함께 부담한다. 부모는 맞벌이로 늘어난 소득을 주거비와 자기계발에 쓰고, 교육비의 일부는 조부모가 떠맡으면서 텐포켓이 작동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구조가 모든 가정에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정적 연금과 자산이 있는 조부모가 있는 가정은 손주 교육에 수백만 원을 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은 조부모가 여전히 생계와 의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는 텐포켓이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 돌봄 노동만 제공하고, 학원, 교재비는 부모가 홀로 떠안는 패턴이 많다.

결국 텐포켓은 평균적으로는 전체 사교육비를 떠받치지만, 계층별로 보면 격차를 더 크게 벌리는 도구가 된다. 상위, 중상위층 아이들은 부모, 조부모의 결합된 자원으로 유치원 이전부터 영어, 수학, 코딩, 예체능을 경험하고 해외 캠프와 조기유학까지 진입한다. 반면 하위층 아이들은 공교육, 방과후 학교, 지자체 돌봄 프로그램에 의존하며 사교육 참여 시간, 과목 수에서 밀린다.

이 구조가 장기화되면 학령인구는 단순히 '숫자가 줄어든 집단'이 아니라 내부가 쫙 찢어진 집단이 된다. 한쪽에는 유아기부터 고3, 재수, 로스쿨, 의대 입시까지 사교육 트랙을 경험한 아이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공교육과 무료 혹은 저가의 온라인 콘텐츠에 의존한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같은 학급에 있지만 누적 학습 시간, 정보량, 입시 전략 이해 수준에서 이미 큰 차이가 난다. 결국 대학 진학률은 비슷해도 어느 대학과 이후 어떤 기업으로 이어지는지까지 보면 격차는 훨씬 크다.

국가적으로 이런 구조는 잠재 성장률에 부담이다. 상위 20~30%의 인적 자본은 고도화되지만 나머지 인구의 교육, 기술 수준이 함께 오르지 못한다. 혁신과 생산성, 창업, 디지털 전환은 넓은 저변이 받쳐줄 때 힘을 얻는데, 한국은 '매우 잘 준비된 소수'와 '평범하거나 뒤처진 다수'로 갈라질 위험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풍경은 다시 출산과 어떻게 맞물릴까. 교육비 부담은 이미 20, 30대에게 가장 큰 출산 기피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사교육 총액과 1인당 사교육비가 매년 최고치를 갈아치운다는 뉴스는,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세대에게 '기본 옵션'을 계속 상향 조정하는 효과를 낸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 장부를 그려본다고 생각 해보자. 전세 또는 대출로 집 문제를 해결하고, 두 사람이 맞벌이를 유지해야 겨우 유지 가능한 구조에서, 여기에 '아이 한 명당 월 사교육비 50만~100만 원'을 더 얹는 시뮬레이션을 그리는 순간, 경제적 부담감 함께 찾아온다. 텐포켓이 작동하는 집안이라면 조부모의 도움을 전제로 계획을 세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에서는 '아이를 하나만 낳자' 또는 '조금 더 미루자' 쪽으로 답이 기운다.

결국 학원가의 밝은 불빛은 역설적으로 출산율을 더 낮추는 심리적 압박 장치가 되기도 한다. '나만 안 시키면 뒤처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강해질수록, '아예 아이 수를 줄이자'는 방향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 보자. 텐포켓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 즉 앞으로 10년 정도는 이 구조가 쉽게 꺾이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 손자녀를 돌보는 60대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상대적으로 두 가지 자산을 갖고 있다. 과거보다 높은 부동산 자산 가격, 그리고 아직은 유지되는 공적연금 수급이다. 이 조합이 손자녀 교육비를 뒷받침하는 데 쓰인다. 출산율이 낮을수록 손자녀 수는 적고, 한 아이에 집중되는 지원은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텐포켓도 구조적 제약에 부딪힌다. 한국이 초고령사회로 더 깊게 들어가면, 조부모 세대의 의료비, 요양비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공적 재정에 압박이 쌓이면 연금의 실질 가치도 떨어지고, 부동산이 정체되거나 하락 구간에 들어가면 자산을 교육비로 현금화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텐포켓의 힘은 약해지지만, 상위 계층에서는 오히려 더 집약적인 형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충분히 쌓아둔 일부 가정은 손자녀가 한 명뿐이라면 그 아이에게 해외 유학, 국제학교, 고가의 에듀테크 구독까지 전부 지원할 수 있다. 반대로 평균적인 가정은 조부모의 지원 여력이 줄면서 교육비를 다시 줄여야 하고, 사교육 시장은 더욱 상위 고객 중심으로 좁혀질 것이다.

사교육 업계 입장에서 텐포켓은 이미 사업 모델의 일부다. 실제 결제는 부모 카드로 이뤄지지만, 영유, 주말캠프, 체험 프로그램은 노골적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를 콘셉트로 내건다. 앞으로는 평일 학습, 주말 가족 체험, 방학 해외 캠프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여행, 소비, 학습'을 통합한 상품도 늘어날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도 매출을 방어하기 위해, 더 강한 텐포켓 자극을 설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경영자의 시각에서 이 판은 결국 '누가 끝까지 불을 켜둘 수 있느냐'의 문제다. 임대료, 인건비, 마케팅비 같은 고정비를 감내할 수 있는 학원, 데이터를 통해 효율적으로 수요를 모으고, 한 번 들어온 학생을 오래 붙잡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학원만이 밤 11시까지 불을 켜 둔다.

그 과정에서 학원가 지도는 계층 지도의 역할까지 겸하게 된다. 10시 이후에도 불이 켜진 학원이 몰려 있는 블록 주위에는 그에 맞는 아파트 가격과 전세가 형성되고, 카페, 서점, 스터디카페, 심지어 필라테스와 키즈카페까지 같은 고객층을 겨냥한 상권이 붙는다. 반대로 불이 일찍 꺼지는 구역은 학령인구 고갈, 소득 수준 정체, 상권 노후화가 겹쳐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동네 학원가 불 꺼지는 시간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첫째, 한국의 저출산은 더 이상 단순히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남아 있는 아이에게 과도하게 쏟아지는 교육비, 그리고 아이가 줄면서 일반적 교육은 점차 사라지고 대형 학원가 위주의 사교육 시장 그리고 그 옆에서 살아야한다는 부모들의 욕구,  그 부담을 두려워하는 잠재 부모의 심리가 결합된 구조적 현상이다.

둘째,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도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현상은 교육 기회와 성취가 계층에 따라 갈라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밤 늦게까지 불이 켜진 학원가 블록은 교육 자본이 몰린 곳이고, 그 주변의 아이들이 미래 노동 시장에서 더 유리한 출발선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텐포켓은 단기간에는 이 구조를 유지시키는 버팀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위 계층의 집중 투자를 더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조부모 세대의 자산 구조, 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 부동산과 금융 시장의 흐름에 따라 텐포켓의 힘은 세대별로 다르게 작동할 것이다.

그래서 학원가의 밤을 볼 때 단순히 '한국은 여전히 교육열이 높다' 수준에서 멈추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 불빛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낳은 아이들 중 누구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지, 그리고 10년, 20년 뒤 한국 경제를 떠받칠 세대가 어떤 얼굴을 하게 될지를 조용히 비춰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