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6500원의 의미 – 메뉴판 속 인플레이션

짜장면값 6,500원을 지켜온 사장님의 망설임 속에서 체감 물가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본다. 통계로는 보이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무게와, 골목 경제의 버텨내는 현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짜장면

점심시간 조금 전이면, 회사 근처 골목이 슬슬 살아나기 시작한다. 배달 오토바이들이 한 번씩 시동을 걸고 지나가고, 맞은편 중국집에서는 커다란 웍 부딪히는 소리가 리듬처럼 들린다. 그 사이에 늘 그렇듯, 유리문 안쪽에서 메뉴판을 들고 서 있는 사장님이 보인다.

짜장면 6,500원.  이 동네에서 몇 년째 유지하던 가격이다. 서울시 평균은 7500원이다. 이렇게 싸게 파는집이 있기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방문하거나 조금만 괜찮은 중국집을 방문하게되면 9000원 10000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곳의 가격은 여전히 6500원. 밀가루 값도, 식용유 값도, 배달 수수료도 다 올랐는데, 이 숫자만은 어떻게든 붙잡고 있던 세월이 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이미 한참 전부터 6,500원이 아니라 7,500원짜리 짜장면을 팔고 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드는 생각이 있다.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상승률은 2%대, 3%대 숫자로 딱 떨어진다. 그 숫자는 깔끔하다. 하지만 이 가게 안에서는, 그 숫자가 체감이 아니라 '남의 나라 이야기'에 가깝다.

가게 안 공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오전부터 준비한 춘장, 다듬어놓은 채소, 미리 삶아둔 면,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 홀을 보는 가족. 이 모든 것이 하루 매출이 조금만 삐끗하면 바로 적자로 돌아서는 구조 위에 올라가 있다. 그 위에서 버티는 가격이 바로 짜장면 한 그릇이다.

사장님 머릿속에서는 아마 이런 계산이 나왔을 것이다. '면 100원, 춘장 100원, 채소 50원, 식용유 50원, 배달 수수료, 카드 수수료… 거기에 임대료, 인건비, 가스비까지 넣으면, 이 가격으로는 더 이상 안 남는데.'

계산기 숫자는 이미 오래전에 ‘올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계산기가 아니라 사람이다.

짜장면을 7,000원으로 올리는 순간, 단골 손님이 '에이, 이제 여기도 너무 비싸졌다'고 느끼진 않을까. 회사 사람들이 '그래도 짜장면은 6,000원대여야지'라는 마음으로 다른 집을 찾지는 않을까. 숫자 500원, 1,000원이 바꾸는 건 장부의 합계만이 아니라 손님과의 관계에 가깝다.

그래서 가격을 올리기 직전,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이 있다. 예전보다 면이 살짝 줄고, 고기 덩어리가 조금 작아지고, 단무지 양파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메뉴판 가격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조용히 사라진다.

이건 통계에 안 찍힌다. 가격은 그대로니까, 공식 지표에서 보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손님은 안다. '요즘 여기 양 좀 줄었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아도, 알게 모르게 기억한다. 그 기억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날부터는 이 집에서 짜장면을 시킬 때 살짝 망설이게 된다.

체감 인플레이션이라는 건 결국, 장바구니를 들고 나올 때, 배달 앱 결제 버튼을 누를 때,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이렇게 평범한 순간에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찾아온다.

사장님 입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통계상으로는 '물가 안정'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본인의 통장은 이미 그 안정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원재료 비용은 계단처럼 올라갔고, 임대료는 내려갈 줄을 모른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결국 본인의 노동과, 아직 올리지 못한 메뉴판 가격이다.

그러다 어느 날, 버틸 수 있는 선이 무너지는 지점이 온다. 그게 바로 메뉴판의 숫자가 바뀌는 날이다. 6,500원이 7,000원이 되고, 조금 지나면 7,500원이 된다. 손님은 '또 올랐네'라고 한마디 하고 넘어가지만, 사장님에게는 몇 년 치 고민끝에 내린 결정이다.

재미있는 건, 이 변화가 동네 단위로 퍼진다는 점이다. 한 집이 먼저 올리면, 나머지 가게들은 유심히 지켜본다. '저 집, 가격 올렸는데 손님 줄었나?' 만약 큰 타격 없이 버티는 것 같으면, 근처 가게들도 하나둘 따라 올린다. 이렇게 해서 동네 전체 점심값의 기준선이 위로 한 칸 올라간다.

인플레이션의 본질은 그 숫자 한 칸이 올라가는 과정을 누가, 어디까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통계는 평균을 보여준다. 하지만 삶은 평균이 아니라, 구체적인 한 그릇, 한 사람, 한 표정으로 움직인다.

사장님이 메뉴판 앞에서 잠깐 멈춰 서 있는 그 순간. 그 표정 안에는 숫자로는 기록되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진실이 들어 있다. 계산대로 하면 올려야 하고, 사람 생각하면 못 올리겠고, 그 사이에서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게의 사정은 나빠진다.

그래서 점심시간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메뉴판을 한 번 더 보게 되는 요즘이다. 가격이 아니라, 그  가격을 결정하느라 사장님이 거쳐 온 고민의 시간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공식 물가 지표에 나오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무게가 조금은 실감나게 느껴진다.